
류지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22일 잠실야구장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강남구 삼성해맞이공원에서 스포츠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류지현
감독(55)은 요즘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한다. 지난해 1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으로 선임되고 1년이 지났다. 3월 5일 대회가 개막한다. 이제는 정말 눈앞이다. 일본 도쿄에서 맞붙을 일본, 대만, 호주 등 조별 라운드 경쟁국 선수들 면면을 떠올리며 머릿속에서 수도 없이 가상 대결을 벌이고 있다. 최근 서울 자택 인근에서 만난 류 감독은 “감독이라는 자리가 너무 마음이 편해도 안 되지 않겠나. 계속 고민을 하다 보면 그 속에서 또 새로운 좋은 수가 나올 것 같다”고 웃었다.
■ 야구 인생 늘 함께였던 태극마크…사령탑의 의미
류 감독은 야구 인생 내내 태극마크와 함께했다. 또래 중 가장 빠르게, 초등학교 6학년 때 리틀야구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고등학교 1학년으로 청소년 대표팀에서 뛰었고, 3학년부터는 성인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현역 은퇴 이후로도 대표팀 인연이 이어졌다. 2006년 초대 WBC 4강을 코치로 함께 했다.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과 2024년 프리미어12에서도 코치로 선수들과 호흡을 맞췄다. 한국 야구가 가장 빛났던 2000년대 초반 영광의 시절부터 부진했던 최근까지 가장 가까이에서 대표팀의 역사를 지켜봤다.
그래서 WBC 대표팀 감독 제의를 받았을 때도 주저하지 않았다. 류 감독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은 안 해본 사람은 정말 모른다. 나는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은퇴 이후까지 계속 대표팀에서 뛴 사람이다. 야구 인생에서 국가대표라는 이름의 영향이 굉장히 컸다. 국가대표에 대한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담감은 당연히 느낀다. 하지만 우리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이 피한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내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대표팀과 함께했다는 건 사령탑으로 류 감독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다.
원태인, 문동주를 비롯해 노시환, 문보경, 김주원 등 대표팀 주축 멤버 다수를 항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지켜봤다. 일본, 대만 등 경쟁국 선수들의 기량도 같은 그라운드 위에서 느꼈다. 그 경험을 가지고 지금 대표팀 전력과 상대국 전력을 가늠하고, 끊임없이 시뮬레이션을 돌리면서 실전 계획을 완성해 나가는 중이다.
KBO리그가 1200만 관중을 돌파하며 전에 없던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최근 야구 대표팀은 좌절과 실망의 연속이었다. 비등비등하게 싸우던 일본을 상대로 2015년 이후 승리가 없다. 10연패를 당하다 지난 11월 2차 평가전에서 극적으로 비겼다. 오래도록 ‘한 수 아래’로 생각했던 대만도 이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 1월부터 준비한다, 이번에는 다르다
류 감독은 최근 대표팀이 WBC에서 부진했던 가장 큰 이유로 ‘준비 부족’을 꼽는다. 정규시즌 개막에 맞춰 컨디션을 끌어올리다 보니 막상 그 전 열리는 WBC는 만전의 상태로 치르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대표팀이 이례적으로 1월부터 해외 캠프를 꾸리고 팀 훈련을 시작하는 것도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대표팀은 오는 9일 사이판으로 출국해 21일까지 1차 캠프 훈련을 진행한다.
류 감독은 “3월5일 대회 개막날 우리가 생각해온 최상의 멤버가 최고의 컨디션으로 모두 라인업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바로 그 부분”이라고 했다. 사이판 캠프부터 선수들의 준비를 확인한다. 2월 오키나와 2차 캠프를 거쳐 대회 개막까지 무조건 100%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 투수들의 준비가 특히 중요하다. 류 감독은 “투수는 캐치볼부터 하프, 불펜, 라이브 피칭까지 정해진 과정이 없으면 경기에 나설 수 없다. 2월 15일 오키나와 캠프가 시작할 때면 실전에서 공을 던질 수 있는 상태가 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일정에 맞추기 위해 지금 시점에서 이미 캐치볼은 되어 있어야 한다. 선수들 모두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빵빵해진 좌완…우타 옵션에 해외파 선택지까지…WBC 8강에 모든 걸 걸었다”…류지현 감독 신년 인터뷰
최정예 멤버를 꾸리기 위해 류 감독은 지난해 시즌 내내 KBO리그 현장을 찾았다. 한국인 메이저리거와 한국계 선수 선발을 위해 미국도 여러 차례 다녀왔다. 지난달에도 강인권 대표팀 수석 코치와 함께 메이저리그(MLB) 윈터미팅을 다녀왔다.
대표팀 투·타 좌우 불균형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는 건 큰 수확이다. 류 감독이 부임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건 그간 대표팀 타선이 지나치게 좌타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강력한 좌완이 상대 선발로 나오면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최근 대표팀이 대만 상대로 고전한 것도 좌완 강속구 투수 린여우민을 좀처럼 공략하지 못한 탓이 컸다.
■ 좌우 불균형 해소, 해외파 합류도 기대
반대로 투수진은 좌완 갈증에 목말랐다. 가장 최근인 2024년 프리미어12 당시 대표팀은 선발과 불펜을 합쳐 좌완을 셋밖에 뽑지 못했다. 그러나 LG 좌완 듀오
손주영
과
송승기
가 리그 정상급 활약을 하면서 대표팀 새 기대주로 부상했다. 둘 다 나란히 사이판 멤버로 발탁됐다. 그리고
류현진
이 16년 만에 다시 대표팀 유니폼을 입는다. 30대 후반이지만 기량은 여전하고 경험도 풍부하다. 3월 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투수진 리더다.
4강→준우승 이후 최근 3연속 조별R 탈락 굴욕
부진 큰 원인은 준비 시간 부족
이번엔 1월부터 사이판서 담금질
태극마크와 늘 함께였던 야구인생
“사령탑으로 부담감은 당연한 몫”
류현진·
이정후
·
김하성
등에
안현민
·
김도영
‘천군만마’
타선에서는 안현민의 등장이 무엇보다 반갑다. 풀타임 첫해부터 폭발적인 타격으로 신인왕을 차지했다. 2024년 최고의 선수였던 김도영도 3차례 햄스트링 부상을 딛고 대표팀 중심 타자로 WBC를 준비한다. 2003년생 동갑내기 김도영과 안현민이 가세하면서 대표팀 우타 중심 타선의 화력은 근래 가장 뜨거울 전망이다.

“대표팀을 서비스라 생각하는 선수 한 명도 없어”
류 감독은 “예전에 대표팀 라인업을 짤 때는 너무 좌타 위주가 돼서 고심이 컸다. 김도영, 안현민이 나오면서 이제 좌우 밸런스가 맞춰졌다. 전략적으로도 훨씬 더 다양한 구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외파 선수들의 합류도 기대가 크다. 이정후, 김하성, 김혜성 등 한국인 빅리거 트리오는 세계 최고들과 맞붙어 본 선수들이다. 라일리 오브라이언, 저마이 존스 등 한국계 MLB 선수들도 대표팀 합류 가능성이 있다. 2006년 1회 WBC 때 해외파만 8명이었다. 이들이 4강 쾌거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류 감독은 “국제대회는 정신적으로 일단 상대에 안 밀려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메이저리거들의 합류가 중요하다. 류 감독은 “1회 WBC때 그걸 느꼈다. 박찬호, 서재응, 최희섭, 봉중근 이런 선수들은 기에서 안 밀리더라. 상대 선수들과 MLB에서 전부 다 붙어봤다는 게 정말 컸다”고 했다. 류 감독은 “이정후, 김하성은 오타니 공을 쳐봤고, 야마모토 공도 쳐봤다. 160㎞가 넘는 공을 다 쳐본 선수들이다. 난생처음 보는 공이 아니라, 이미 상대해봤던 공이기 때문에 그라운드에 들어서서도 정신적으로 밀리지 않고 싸울 수 있다. 그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고 했다.
■ 대표팀 마인드,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 8강 진출에 모든 걸 건다
대표팀은 3월5일 체코와 조별라운드 첫 경기를 치른다. 7~8일 일본과 대만을 차례로 만나고, 9일 호주와 마지막 대결에 나선다. 2위 안에 들어야 미국에서 열리는 8강 결선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다. 전략적 선택이 중요할 수 있다. WBC 본선라운드에서 선발 투수는 65구 넘게 던질 수 없다. 불펜 투수도 50구 이상 던지면 무조건 4일을 쉬어야 한다. 선발 1명으로 경기를 끝낼 수가 없다. 필요에 따라 가장 강한 투수 3명을 1경기에 모두 투입하는 선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류 감독이 대회 마지막까지 가장 고심하게 될 부분도 결국 투수 운용이다.
선수들의 열정과 의지는 과거 어느 때보다 뜨겁다. 류 감독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류 감독은 2023년 항저우 아시안게임 때 코치로 대표팀에 복귀했다. 선수들 분위기가 과거와 다르다는 걸 피부로 느꼈다. 류 감독은 “선수들 마인드가 굉장히 건강해졌다. 대표팀에서 뛰고 싶다는 욕구가 정말 강하다. 대표팀을 무슨 ‘서비스’처럼 생각하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다. 지금 선수들은 야구 인기가 폭발하면서 얼마나 높은 관심과 뜨거운 응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몸으로 느껴왔다. WBC 같은 국제대회는 그런 면에서 정말 큰 기회”라고 했다. 대표팀 선발 때도 그런 선수들의 열망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조금이라도 대회 참가를 꺼린다면 발탁하지 않았다. 대표팀 선수 모두가 한 몸처럼 대회를 준비하고 그라운드에 나서야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류 감독은 “목표는 무조건 8강 토너먼트 진출”이라고 했다. 한국은 WBC 1회 대회 4강, 2회 대회 준우승 이후 3개 대회 모두 조별라운드에서 탈락했다. 류 감독은 “국내 최고 스포츠로 야구를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반드시 토너먼트까지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3월 WBC는 한국 야구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는 무대다. 야구 인생 내내 태극마크와 함께 했던 류 감독도 막중한 책임감과 함께 새 도전에 나선다.
심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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