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금메달보다 그랜드슬램이 중요한 테니스, 왜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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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금메달보다 그랜드슬램이 중요한 테니스, 왜 다를까?

하이커뮤니티매니져 0 9 09.23



[베이스라인 밖에서] 국경 초월한 팬덤과 투어 중심 생태계로 진화한 테니스의 세계













스페인의 카를로스 알카라즈가 5일 미국 뉴욕에 있는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 아서 애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2025 US 오픈 테니스대회 님자단식 4강에서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후 기뻐하고 있다.

ⓒ AFP/연합뉴스



스포츠 팬심에는 불문율이 있다. '국가대표'라는 이름만 붙으면 국민은 열광한다. 월드컵 축구에서 태극전사가 그라운드에 서면 거리는 붉게 물들고, 올림픽 야구에서 결승 홈런이 터지면 한밤중에도 집집마다 환호가 터진다.




대부분의 인기 종목이 그렇지만, 이 법칙을 비웃는 예외가 있다. 바로 테니스다. 금메달이 걸린 올림픽 결승조차 지상파 편성표 한쪽으로 밀려나고, 누가 우승했는지조차 쉽게 기억되지 않는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올림픽 무대에 한국 선수가 서더라도 주요 채널에서 그 경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왜 유독 테니스는 올림픽의 마법이 통하지 않는 걸까. 이 질문은 테니스라는 종목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는 흥미로운 출발점이다.





아마추어 정신, 테니스의 60년 유배





답을 찾으려면 먼저 올림픽이 어떤 정신을 바탕으로 시작했는지를 봐야 한다.




근대 올림픽을 만든 사람은 프랑스의 귀족 피에르 드 프레디, 쿠베르탱 남작(Pierre de Frédy, Baron de Coubertin)이었다. 그는 올림픽을 단순한 스포츠 대회가 아니라, 젊은이들이 도덕성과 교양을 기르는 교육적 장으로 구상했다. 그래서 그의 핵심 철학은 아마추어리즘(amateurism)이었다. 돈을 받고 뛰는 '프로 선수'는 순수성이 훼손된다고 보았고, 생활과 무관하게 명예만을 좇는 '아마추어'야말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구현한다고 믿었다. 이는 당시 유럽 상류층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었다. 스포츠는 직업이 아니라 교양, 즉 '돈보다 명예'라는 신념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테니스 역시 한동안 아마추어만이 뛸 수 있는 세계였다. 영국의 윔블던이나 프랑스의 롤랑가로스 같은 전통의 무대는 1968년 '오픈 시대(Open Era)' 이전까지 프로 선수에게 문을 닫았다. 때문에 세계 최고의 기량을 지닌 선수들조차 '프로'로 전향하면 그랜드슬램에 나설 수 없었고, 올림픽 역시 출전 자격이 없었다. 테니스 역사에서 이 시기를 흔히 아마추어 시대라 부른다.




그러나 테니스의 현실은 곧 쿠베르탱의 이상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아마추어리즘' 원칙을 고수하며, 상금이나 여행 경비 지원을 받는 선수는 곧바로 프로로 규정했다. 반면 테니스는 이미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상금 대회가 자리 잡고 있었고, 선수들에게 원정 경비 지원은 사실상 생존 조건이었다. 즉, IOC의 눈에는 일상적 관행조차 '규정 위반'으로 비쳤던 것이다. 결국 IOC와 국제테니스연맹(ILTF)은 이 문제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고, 테니스는 1924년 파리 대회를 끝으로 정식 종목에서 제외되었다. 그 여파로 테니스는 무려 60여 년 동안 올림픽과 인연을 끊게 되었다.





올림픽 금메달, 0점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상황은 달라졌다. 올림픽과 테니스의 단절이 길어지는 동안, 아마추어리즘이라는 원칙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선수들은 상금을 받지 않아도 원정 경비와 지원을 통해 사실상 프로와 다르지 않게 활동하고 있었다. 전환점은 1980년, 스페인 출신의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Juan Antonio Samaranch)가 IOC 위원장에 오르면서 찾아왔다.




그는 올림픽을 현대화한 인물로, 프로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해 아마추어리즘 시대를 사실상 끝낸 장본인이었다. 변화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수적인 위원들의 반대가 여전했기 때문에, 1984년 LA 올림픽에서 테니스는 먼저 '시범 종목'으로 돌아왔다. 이 경험이 성공을 거두자, IOC는 마침내 1987년 표결을 통해 정식 복귀를 결정했고,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64년 만의 귀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때쯤 테니스는 이미 '국가대표 경기'보다 매달 열리는 투어와 그랜드슬램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자기만의 리그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래서 돌아온 서울 올림픽은 테니스 선수들에게 여전히 한 번쯤 들르는 특별한 무대일 뿐, 커리어를 좌우하는 중심 무대는 아니었다. 오늘의 풍경도 그 연장선이다. 테니스는 52주 달력으로 돌아가는 '연재 드라마'이고,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끼어드는 '스페셜 편'이다. 스페셜 편이 아무리 화려해도 시즌 전체를 압도할 수는 없다.




실제로 선수와 팀의 경제적 유인마저 대부분 투어에서 결정된다. 올림픽 테니스는 선수들의 랭킹 포인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남녀 단식 금메달 수상자에게 ATP나 WTA 랭킹 포인트가 부여된 적은 있다.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면 세계 순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2016년 리우 대회를 기점으로 사라졌다.




이후 올림픽 주최 측과 ATP·WTA 투어 조직은 "올림픽 경기는 랭킹과는 별개로 본다"는 쪽으로 합의했고, 지금은 금메달을 따도 세계 랭킹 점수는 한 점도 오르지 않는다. 실제로 WTA가 발표한 2024 파리 올림픽 안내문에도 "올림픽 참여에 대해 WTA 랭킹 포인트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명확히 적혀 있고, ATP 역시 같은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윔블던이나 US오픈 우승은 2000점을 얻어 커리어 전체를 뒤흔들지만, 올림픽 금메달은 상징적 영광일 뿐 선수의 순위와 직결되지 않는다.





국경을 초월한 팬덤















▲ 시비옹테크의 집념

이가 시비옹테크(2위·폴란드)가 2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테니스경기장에서 열린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코리아오픈 단식 결승에서 에카테리나 알렉산드로바(11위·러시아)와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 연합뉴스



테니스 팬들의 열광은 언제나 국기보다 선수 개인에 맞춰져 있다. 알카라스의 폭발적인 질주 같은 이야기들은 국가를 넘어 세계적인 서사로 소비된다. 그렇기에 올림픽 테니스가 '국민적 광장'을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테니스의 매력이 부족하다고 볼 수는 없다. 애초에 테니스는 국가주의 무대가 아니라, 투어와 개인 기록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수치만 보아도 그 격차는 분명하다. 2024년 US오픈은 대회 사상 처음으로 관중 100만 명을 돌파했고, 2025년 US오픈 남자 결승전은 미국 ABC 방송에서 330만 명이 시청하며 전년 대비 약 40% 증가했다. 같은 해 윔블던 결승 역시 시청률이 30% 이상 상승하며 최근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올림픽 테니스의 경우 공개된 통계가 제한적이지만, 전체 올림픽 중계 속에서 수영·육상 결승 같은 전통적 메인 종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다. 올림픽 무대에서조차 테니스는 '주력 종목'으로 자리잡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스타 선수가 없는 나라라서 올림픽 테니스 인기가 낮은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테니스 강국에서조차 올림픽의 위상은 그랜드슬램에 한참 못 미친다. 테니스 방송에서 선수의 커리어를 설명할 때 가장 강조되는 건 언제나 그랜드슬램 성적과 랭킹이다. 중계 화면에는 'Grand Slam Titles'이나 'ATP/WTA Ranking' 같은 지표가 굵직하게 표시되고, 해설자들은 선수 이름과 함께 '윔블던 우승 7회', 'US오픈 디펜딩 챔피언' 같은 수식을 거의 공식처럼 붙인다. 시합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 승리로 세계 랭킹 1위 탈환 가능성"이나 "포인트 레이스에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가 주요 해설 포인트로 반복된다.




올림픽 메달은 앤디 머레이처럼 두 번 정도 금메달을 딴 경우가 아니면, 간단히 이력 중 하나로만 언급되는 수준에 머문다. 즉, 방송 내에서 테니스 커리어의 위계는 이미 슬램과 투어 성적 중심으로 서사가 짜여 있고, 올림픽은 거기에 부수적으로 덧붙는 장식에 가깝게 다뤄지는 것이다.




팬덤 역시 국적을 초월해 형성된다. 스페인 안에서도 나달과 알카라스를 두고 팬층이 나뉘고, 페더러와 조코비치를 지지하는 팬들은 국가 경계를 넘어 대립한다. 이런 풍경 속에서 '국가대표'라는 단어는 테니스에서 힘을 가지기 어렵다. 결국 테니스의 진짜 무대는 국가가 아니라, 코트 위에서 펼쳐지는 개인의 이야기다.




이러한 변화는 테니스가 단순히 국가적 스포츠에서 밀려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올림픽 이후의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시청률과 관중 수가 매년 갱신되는 그랜드슬램, 도시와 결합한 브랜드 파워, 그리고 국경을 초월한 팬덤은 테니스를 포스트 올림픽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국가가 아니라 시장, 국기가 아니라 스타가 중심이 되는 새로운 질서 속에서, 테니스는 앞으로 어떤 미래를 열어갈까.





포스트 올림픽 스포츠





2025년, 테니스 지형은 더 이상 유럽과 북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상하이 마스터스는 아시아 유일의 ATP 1000급 대회로 자리 잡았고, 베이징 오픈은 WTA 프리미어 대회로 성장했다. 여기에 항저우와 청두 오픈 같은 중국 내 신흥 대회들이 빠르게 뿌리내렸고, 도쿄 오픈과 서울 코리아오픈은 동아시아 팬덤을 넓히는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관중 수가 늘어난 것을 넘어, 글로벌 스폰서십과 중계권 수익이 아시아 무대에 몰리면서 투어 전체의 경제 지형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시즌 후반 '아시아 스윙'은 이제 단순한 원정 경기가 아니다. 선수들에게는 랭킹 포인트를 지키고, 기업 후원 행사까지 소화해야 하는 전략적 구간이 됐다. 두바이와 도하 같은 중동 대회까지 포함하면, 아시아·중동 전역이 거대한 투어 허브로 묶인다. 결국 이 변화는 어느 나라가 강국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도시와 시장이 더 많은 팬과 자본을 끌어들이는가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이 흐름을 가속화하는 것은 미디어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브레이크 포인트>는 투어 일정을 하나의 드라마처럼 보여주었고, 유튜브와 틱톡은 경기 순간을 짧은 영상으로 확산시키며 팬덤을 넓혔다. 덕분에 올림픽처럼 4년에 한 번 모이는 이벤트보다, 매주 열리는 투어가 더 강력한 스토리의 연속으로 소비된다.




팬들이 찾는 무대는 이제 '국가'가 아니라 '도시'다. 런던의 윔블던, 파리의 롤랑가로스, 뉴욕의 US오픈, 멜버른의 호주오픈은 매년 같은 장소에서 열리며 도시 브랜드를 강화하고, 전 세계 스폰서를 끌어들인다. 반면 올림픽은 도시가 바뀔 때마다 무대를 옮기지만, 그 도시와 긴밀한 서사를 쌓지 못한다. 이 차이 덕분에 테니스는 올림픽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브랜드 가치를 축적한다.





국가대표의 올림픽, 스타의 테니스





올림픽은 여전히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무대다. 금메달 하나에 새벽 거리가 붉게 물들고, 한 선수가 포디움에 서면 곧바로 '국민 영웅'이라는 칭호가 붙는다. 스포츠가 국가 자부심으로 작동하는 장면은 한국에서 여전히 강렬하다. 이런 풍경 속에서 "올림픽이 테니스에서는 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느냐"라는 질문은 다소 의아하게 들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쇼트트랙 선수들은 매년 월드컵과 세계선수권에서 꾸준히 성적을 내지만, 대부분은 소수 팬들만 아는 뉴스다. 하지만 올림픽은 그 모든 대회를 단숨에 덮어버릴 만큼 압도적인 관심을 끌어낸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피겨 스케이팅 금메달을 땄을 때, 전 국민이 밤을 새워 경기를 지켜봤다. 2025년인 지금도 유튜브에는 김연아가 경기 후 눈물을 훔치던 장면에 "매년 다시 보러 온다",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는 댓글이 달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가대표가 세운 기록은 선수 개인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함께 자랑스러워하는 순간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다시 테니스로 돌아와보자. 테니스 팬들에게 올림픽 금메달은 선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라파엘 나달을 영웅으로 만든 건 프랑스오픈 14회 우승이고, 조코비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든 건 그랜드슬램 최다 기록이다. 결국 테니스의 역사는 우리에게 도발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스포츠의 권력이 더 이상 '국가 대 국가'의 대결이 아니라, '이야기 대 이야기, 스타 대 스타'의 경쟁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올림픽이라는 무대가 앞으로도 세계 스포츠의 중심으로 남을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어쩌면 올림픽은 언젠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결승전'이 아니라, 수많은 드라마 중 특별편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미래를 가장 먼저 보여주고 있는 종목이 바로 테니스가 아닐까.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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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위 경기 승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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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스널 18 12 4 2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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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트넘 18 11 3 4 36
5 맨시티 17 10 4 3 34
6 맨유 19 10 1 8 31
7 웨스트햄 18 9 3 6 30
8 뉴캐슬 19 9 2 8 29
9 브라이튼 18 7 6 5 27
10 본머스 18 7 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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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울버햄튼 18 6 4 8 22
13 풀럼 19 6 3 10 21
14 브렌트포드 17 5 4 8 19
15 크리스탈 팰리스 18 4 6 8 18
16 노팅엄 포레스트 19 4 5 10 17
17 에버턴 18 8 2 8 16
18 루턴 18 4 3 11 15
19 번리 19 3 2 14 11
20 셰필드 19 2 3 1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