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2025 여수·NH농협컵 프로배구대회(컵대회) 비정상 개최는 예견된 참사였다.
한국배구연맹(KOVO) 사무국은 컵대회 개막전을 치른 13일에서 14일로 넘어가는 자정쯤 "국제배구연맹(FIVB)과 개최에 대한 최종 답변을 받지 못해 남자부 경기를 전면 취소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14일 새벽에 FIVB가 뒤늦게 조건부로 컵대회 개최를 승인하면서 부랴부랴 대회를 속개하기로 했지만, 이미 정상 운영은 어려워졌다.
우선 초청팀 나콘라차시마(태국)는 한 경기도 못 치르고 한국을 떠나게 됐다.
FIVB는 이번 컵대회에 외국팀과 외국인 선수 참가를 불허한다고 통보했다. 나콘라차시마는 곧바로 귀국하는 대신 원래 치르기로 했던 경기 날 상대 팀과 가볍게 연습만 소화하기로 했다. 결국 KOVO 사무국의 행정 미숙으로 먼 곳에서 초대한 손님에게 결례를 범한 셈이다.
이번 컵대회 비정상 개최 사태는 예고된 참사였다는 게 배구계의 시각이다.
사건의 발단은 국제이적동의서(ITC)다. 배구 선수의 해외 이적 시 계약 분쟁을 방지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된 ITC는 FIVB에서 관리한다.
특정한 리그가 외국 선수를 기용하고자 하면 FIVB로부터 ITC를 발급받아야 한다.
KOVO가 매년 개최하는 컵대회는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전력을 점검하기 위한 무대다.
구단들은 일찌감치 컵대회부터 외국인 선수를 기용해 기량을 점검하고자 하고, KOVO도 대회 흥행을 위해 외국인 선수 출전을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올해 컵대회 개최 기간이 FIVB 남자 세계선수권대회와 겹친다는 점이다.
KOVO 사무국은 컵대회를 준비하던 시기인 지난달 FIVB에 ITC 발급 절차를 거치지 않고 외국인 선수 출전을 허가하기로 결정했다.
관계자 말에 따르면, "세계선수권대회 기간에 굳이 FIVB를 통해 ITC 발급을 요청하면 거절당할 수 있으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FIVB가 ITC 발급을 요구하는 건 정규 리그이고, 컵대회는 친선 경기와도 같은 이벤트 대회라 ITC 발급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으로 KOVO는 국제적으로 망신당했다.
남자부 한 구단 단장은 "상금까지 걸린 대회인데 어떻게 이벤트 대회냐.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제대로 절차를 밟자"고 주장했으나 KOVO 사무국은 이를 묵살했다가 일이 커졌다.
게다가 FIVB는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고 3주 이상 휴식기를 가지고 각국 리그를 시작하라'고 명시했다.
KOVO 사무국은 이번 컵대회를 정규 대회가 아닌 이벤트 대회로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가 이번과 같은 혼선을 빚었다. FIVB는 뒤늦게 이번 컵대회를 '어떠한 경쟁적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고 규정해 이번에만 대회 개최를 승인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이 조건을 위반하면 징계 절차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곁들였기에, 대회에 걸린 우승 상금을 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남자부 컵대회 개최 여부는 일단락됐지만, 21일부터 시작하는 여자부도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FIVB 규정대로면, 올해 여자 세계선수권대회가 지난 7일 막을 내렸으니 대회 개막일은 3주가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정상 개최가 어렵다.
KOVO 사무국 관계자는 "애초부터 FIVB는 여자 국가대표가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자부 컵대회 개최는 문제로 삼지 않았다"고 밝혔다.
다만 남자부와 같은 조건을 적용하면 여자부 외국인 선수의 ITC 발급도 어려울 전망이라, 여자부 역시 외국인 선수 없이 대회를 치를 것으로 보인다.
신무철 KOVO 사무총장은 FIVB 집행부와 만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날 오전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는 필리핀으로 출국했다.
이번 일로 여수시와 NH농협 등 대회 스폰서의 피해가 작지 않다.
KOVO 사무국 관계자는 "이번 일로 많은 분께 혼란을 드린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스폰서 보상 문제는 대회를 마친 뒤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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