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소 옛날 표현이지만, 한 때 3대 악마의 게임으로 칭해졌던 시리즈가 있다. 최근 살짝 삐끗하긴 했지만 아직도 건재한 문명 시리즈, 이제 진짜 추억속 게임이 되버린 HOMM, 그리고 이 중에서도 원탑의 막장력을 자랑하는 축구 팬들의 영원한 장난감 '풋볼 매니저(FM)' 시리즈.
시작은 무려 93년도, 수많은 게이머들이 미처 태어나기도 전이다. '챔피언십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이 축구 시뮬레이터는 12년 후 '풋볼 매니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다시 20년을 이어왔고, 2025년 작품이 여러 논란과 이슈속에 '개발 취소'로 마무리된 후, 2년 만에 신작인 FM2026을 내놓기 직전인 지금 이 시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뒤에 '마일스 제이콥슨(Miles Jacobson)'이 있다. 94년도에 스포츠 인터랙티브에 합류해 개발자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작품들을 총괄해온 끝에 2011년엔 게임 개발 이력만으로 OBE(대영제국 4등급 훈장)의 수훈자가 되었다.
한 달도 더 전, TGS2025 일정을 짜며 잡힌 'FM2026'의 사전 인터뷰. 인터뷰이가 마일스 제이콥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방향을 약간 틀었다. 'FM2026'도 좋지만, 나아가 FM 그 자체에 대해서도 약간이나마 물어볼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 스포츠 인터랙티브 스튜디오 디렉터 '마일스 제이콥슨' OBE
Q. FM25의 출시가 취소되고 1년 연기가 진행되면서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커졌다. FM26의 방향성은 무엇인지 설명해줄 수 있나?
“FM26은 사실상 FM25가 되려던 작품이다. 하지만 FM25에서는 우리가 너무 똑똑해 보이려 했고, 또 너무 야심차게 접근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가장 큰 문제는 내비게이션 시스템이 형편없었다는 점이다. 개발자로서 중요한 것은 성공뿐만 아니라 실수도 인정하는 것이기에 이 점은 분명히 인정하고 싶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FM25가 좋은 게임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고, 해당 작품을 출시하는 건 악수가 되리라 판단했다. 이 판단에 대해 다행히 퍼블리셔인 세가도 우리를 지지해주었기에 출시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FM26은 잘못된 부분들을 바로잡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조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번 작품은 새로운 엔진에서 만든 첫 작품이다. 처음으로 유니티(Unity) 엔진을 사용했는데, 자체 엔진에서 외부 엔진으로 옮겨가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옳은 선택이었다. 우리가 시도한 것은 시리즈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처럼 여러 시즌이 있고 끝이 나면 또 새로운 시작이 있는 것과 같다.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맞는 것은 2009년 처음 3D 매치 엔진을 도입했을 때 이후 처음이다.
그래서 유저들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유저 인터페이스(UI)다. 신규 유저들에게는 훨씬 쉽지만, 기존 유저들은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그들은 오랫동안 특정 위치에 있던 기능들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많은 것이 바뀌었고, 타일과 카드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는 윈도우, 맥, iOS 같은 최신 운영체제가 채택한 방식과 비슷하다. FM26은 FM24와 비교해 그래픽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모션 캡처와 볼류메트릭 애니메이션을 활용해 애니메이션도 대폭 좋아졌다. 기본적인 게임 플레이는 익숙하지만, 곳곳에 새로운 조정과 기능들이 추가되었다. 이는 시리즈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 개발 취소된 FM2025, 욕심이 너무 과했다고 인정했다.
Q. FM 시리즈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유저들의 피드백이 빠지지 않을 것 같다. FM26에 피드백이 반영된 과정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매년 커뮤니티 피드백을 분석하고, 그 의견을 반영해 기능을 추가하거나 조정한다. 사실 우리는 업계 최초로 커뮤니티를 구축한 스튜디오 중 하나로 무려 1994년부터 운영해왔다. 지금의 많은 플레이어들이 태어나기도 전이다(웃음). 심지어 나도 커뮤니티 출신으로, 스튜디오에 합류해 지금은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팀원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피드백은 늘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반영 사례를 다 말한다면 인터넷이 마비될 것이다(웃음). 그만큼 많다. 특히 한국 팬들은 열정적이라 영국 외 국가 중 처음으로 전담 커뮤니티 매니저를 채용한 나라가 한국이다. 제이크(Jake)라는 매니저가 있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이 맡고 있다. 그게 벌써 7년 전이다. 지금은 독일, 프랑스 등 다른 나라에도 커뮤니티 매니저가 있다.
Q. 유니티 엔진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어땠나?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많은 엔지니어들이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했다. 새로운 엔진으로 전환하는 것은 항상 어려운 일이다. 한 개발자가 나에게 “기술팀이 예상하는 시간표를 들으면, 그걸 두 배로 잡아라”라고 말했을 정도다(웃음). 그만큼 힘들었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엔진을 바꾼 적이 없었는데, 앞으로도 30년은 다시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발전은 필요하다. 유니티가 제공하는 가능성은 엄청나다. 그래픽뿐만 아니라, Football Manager처럼 UI 집약적인 게임에서 UI 엔진의 성능도 크게 중요하다. 유니티와 직접 협력해 UI 엔진을 개선했고, 앞으로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다. 새로운 도구를 쓰는 것은 언제나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FM26을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단 적응하면 아주 좋은 경험이 되고, 우리는 유니티 엔진도 그렇게 보고 있다.

▲ 이전보다 훨씬 '축구 게임'스러워진 비주얼
Q. FM26만의 새로운 콘텐츠나 시스템은 무엇이 있나?
“굉장히 많다. 먼저, ‘트랜스퍼룸(Transfer Room)’이라는 새로운 이적 시스템이 있다. FM24에서 이름만 살짝 언급됐지만 실제 구현되지는 않았었다. 이번에는 실제 구단이 이적을 하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했다. 또 애니메이션 엔진도 크게 바뀌었고, 모션 캡처와 볼류메트릭 데이터를 모두 활용한다. 전술 모듈도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서, 공격 시와 수비 시로 나누고, 각 포지션마다 역할을 설정할 수 있다. FM24의 단순한 연장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장이 열린 것이다.
또한, FM26에서는 ‘축구 백과사전’을 내장했다. 덕분에 축구 팬이 아니더라도 RPG를 좋아하는 게이머라면 게임을 하면서 축구 전술이나 훈련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축구 팬이 아닌 게이머들도 이 게임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게임을 넘어 축구 그 자체에 대한 백과사전인 FM피디아
Q. 한국에서는 FM 시리즈가 워낙 많은 시간을 쓰게 만들어서 악마의 게임 중 하나라는 밈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개인적으로 PC 버전의 긴 플레이 타임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럽다. 코어 게이머들의 평균을 내 보면 FM24의 PC 평균 플레이타임은 550시간이었고, 모바일은 100시간 정도였다. 1년에 100시간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물론 다른 게임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웃음).
물론 시간을 덜 들이고 싶은 유저를 위해 이번에는 넷플릭스 모바일 버전, 콘솔 버전, 닌텐도 스위치 버전 등 다양한 ‘가벼운 버전’을 제공한다. 각각 다른 복잡도와 평균 플레이 타임을 가지고 있다.
Q. 플랫폼 별로 게임의 차이는 어떻게 되나?
“PC 버전은 여전히 하드코어 시뮬레이션이다. 콘솔 버전은 컨트롤러 환경에 맞춰 경량화되어 있고, 일부 기능은 생략된다. 모바일(넷플릭스) 버전은 훨씬 가벼운 ‘레트로 버전’으로, 마치 우리가 10년 전에 만들던 게임과 같다.
영국에는 ‘몰티저스(Maltesers)’라는 초콜릿이 있다. “더 가볍게 즐기는 초콜릿”이라는 광고를 한다. FM 모바일 버전은 그와 같다. PC 버전이 ‘풀 팻 콜라’라면, 모바일은 ‘다이어트 콜라’ 같은 느낌이다 (웃음).

▲ PC버전은 말 그대로 '풀버전', 모바일은 좀 더 가벼운 게임이다
Q. 최근 AI가 게임 개발에도 많이 쓰이는데, FM 시리즈에도 적용되었나?
“게임 기능 측면에서는 아니다. AI, 특히 생성형 AI는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다만 번역 과정에서는 활용했다. 여성 축구를 추가하면서 23개 언어로 약 600만 단어를 여성형으로 바꿔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오픈AI와 협력했다. 하지만 기존 번역팀과 QA팀의 일자리를 지키면서 윤리적으로 활용했다. 지금 단계에서 AI를 게임 기능에 도입하면 너무 일반적이고, 부정확할 수 있으며, 소비자에게 높은 비용이 전가된다. 5년, 10년 후에는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즘 웹사이트 고객 지원이 AI로 바뀐 걸 써본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웃음).
Q. 워낙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는 게임이니만큼, 데이터 관리에도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 같다. 그 와중 개인 데이터는 민감한 영역을 건드릴 수도 있는데, 데이터 관리 체계에 대해서도 설명해줄 수 있나?
“일단 우리는 변호사들과 굉장히,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예를 들자면, 선수들의 체중 데이터는 제외했다. 왜냐하면 체중은 아침과 저녁, 식사 전후마다 바뀌기도 하고, 민감한 개인 사항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데이터 수집 팀은 52개국에 약 1,600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리서치 네트워크를 운영한다. 이들은 매주 축구 경기를 관찰하고 데이터를 수집한다.
우리가 만든 데이터베이스는 단순히 최고의 게임 데이터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축구 데이터베이스다. 실제로 40개 이상의 프로 구단이 우리 데이터를 스카우팅 용도로 라이선스해 사용하고 있다. 나는 처음에 데이터 연구원으로 시작했고, 지금은 30년 넘게 함께해온 동료들이 연구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도 많은 스카우터와 연구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올해는 한국 여자축구까지 포함되지 않았지만, 언젠가 이를 반영하기 위해 남녀 선수들을 모두 관찰하고 있다.

▲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리서치 팀만 1,600여 명에 달한다.
Q. 30년 이상 FM 시리즈를 개발해온 만큼, FM을 넘어 '축구' 자체의 팬이기도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응원하는 팀이 있나?
“일단 내 팀은 끔찍하다(웃음). 나는 왓포드의 팬인데, 이유는 내가 왓포드 출신이기에 어렸을 때 유일하게 돈을 들이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곳이 왓포드의 구장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 부모님은 축구에 관심이 전혀 없으신 분들이다. 어머니는 나를 단 한 번 구장에 데려가셨고, 아버지는 그마저도 하지 않으셨다. 때문에 친구들과 함께 경기를 보면서 왓포드의 팬이 되었고, 이제는 내 삶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왓포드는 도깨비 같은 팀이다. 내가 응원할 때만 해도 4부 리그에 있었으나 프리미어리그까지 승격했고, 다시 3부 리그로 강등되는 등의 기복을 계속 겪었다. 그럼에도 왓포드 구장은 내게 교회와 같은 곳이다. 지금의 파트너와 만났을 때도, 내 첫사랑은 축구와 왓포드라 말했으며, 결혼식이 축구 시즌 주말에 열리면 난 경기장에 갈 것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웃음).
Q. 마지막으로, 한국에도 수많은 FM 시리즈의 하드코어 게이머들이 있다. 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는가?
“먼저, 우리 게임이 팬들의 삶의 큰 부분이 된 것에 정말 기쁘다. 앞으로도 게임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꿈을 펼쳐가길 바란다. 새로운 한국의 커뮤니티 매니저 제이(Jay)도 제이크(Jake) 때처럼 따뜻하게 맞아주고, 언제든 피드백을 주길 바란다. 팬들의 의견은 모두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항상 즐겁게 확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