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이더컵 갤러리는 짓궂고 시끄럽기로 유명하다. [AP=연합뉴스]
“일곱, 여덟, 아홉, 열….” 2019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베스페이지 골프장 블랙코스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 챔피언십에서 갤러리가 입을 모아 세르히오 가르시아의 웨글 횟수를 셌다. 가르시아의 슬로플레이를 대놓고 조롱한 것이다. 뉴욕의 스포츠 팬들은 짓궂고 시끄럽다.
오는 26일 같은 장소에서 미국과 유럽의 골프 대항전인 라이더컵이 개막한다. 2023년 로마 원정에서 유럽에 11.5-16.5로 참패한 미국이 복수를 벼르고 있다. 베스페이지 블랙은 매우 어려운 코스다. 1번 티에 “극도로 어려우니 숙련자만 플레이하라”는 경고 표지판이 붙어 있을 정도다. 미국 주장 키건 브래들리는 러프를 깎고 전장을 줄이는 등 홈팀에 유리하게 코스를 세팅할 계획이다. 미국의 장타 선수들이 러프에서도 버디를 쉽게 잡을 수 있게 하려는 전략이다.

유럽은 매킬로이(맨 앞)를 앞세워 2연패를 노린다. [AP=연합뉴스]
이번 라이더컵의 최대 변수는 갤러리다. 베스페이지 블랙은 ‘피플스 컨트리클럽’이라 불릴 정도로 대중적인 골프장이고, 뉴욕 팬들은 조급하고 불안정한 성향으로 유명하다. 비싼 티켓값을 치른 만큼 시끄럽게 응원하거나 선수를 조롱할 권리가 있다고 여긴다. 게다가 유럽 선수들은 ‘민감한 귀’를 가졌다. 타이렐 해튼, 셰인 로우리 등은 다혈질이고 관중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로리 매킬로이는 지난 대회 당시 미국 선수의 캐디와 싸웠고, 로버트 매킨타이어는 지난달 BMW 챔피언십에서 관중과 말다툼했다.
전문가들은 관중이 미국의 ‘13번째, 14번째, 15번째 선수’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 특히 미국이 초반 앞서갈 경우 관중의 에너지와 엉켜 폭발하면서 일방적인 경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비해 유럽은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게 가상현실(VR) 헤드셋을 활용한 관중 야유 대비 훈련이다. 실제 경기에서 들을 수 있는 각종 야유와 방해를 미리 체험하는 것이다. 매킬로이는 “VR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는 상상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사실 관중 효과는 양날의 검이 될 수도 있다. 미국이 초반 부진하면 조급한 뉴욕 팬들은 오히려 자국 선수들에게 야유를 보낼 수도 있다. 술 취한 관중의 무질서한 행동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미국은 세계 1위 셰플러(왼쪽)가 전 경기에 나선다. [AFP=연합뉴스]
브래들리는 세계 1위 스코티 셰플러를 전 경기에 출전시킬 계획이다. 안정적인 러셀 헨리와 한 조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캐릭터의 브라이슨 디섐보도 중용할 전망이다. 유럽 주장 루크 도널드는 존 람-해튼, 매킬로이-토미 플리트우드, 빅터 호블란-루드빅 오베리 등 검증된 조합을 활용할 예정이다. 2023년 우승 멤버 11명을 그대로 유지한 연속성이 유럽의 가장 큰 무기다.
초반 포섬 세션도 중요하다. 2021년 휘슬링 스트레이츠에서 미국은 포섬에서 6승2패를 기록하며 대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반면 2023년 로마에서 유럽은 포섬에서 7승1패를 거두며 압승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미국 승리를 예상한다. 개별 선수의 실력도 미국이 우위인 데다, 최근 10차례 대회에서 홈팀이 9승을 거둔 압도적인 홈 어드밴티지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브래들리는 가르시아의 웨글을 세던 그 뜨거운 관중이 유럽 선수들의 그 민감한 귀를 제대로 건드려주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