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트윈스, 시즌 막판 3연패·불펜 붕괴에도 우승...22일 꿀맛 휴식 확보

LG 선수단이 1일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지은 뒤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LG 트윈스)
[스포츠춘추]
"The winner takes it all." 1위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KBO리그 포스트시즌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문장이다.
1일 LG 트윈스는 잠실 NC 다이노스 전에서 패하며 자력 우승 기회를 스스로 놓쳤다. 비슷한 시간 한화가 인천에서 SSG를 이기면 0.5경기차로 추격당하고, 3일 경기까지 이기면 공동 1위가 되어 1위 결정전을 치러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이미 정규시즌 경기를 다 치른 뒤라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한화가 지기만을 기도해야 하는 처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기적이 일어났다. 한화 마무리 김서현이 5대 2로 앞선 9회말 2아웃 이후 신인급 타자 현원회에게 2점 홈런을 맞았고, 이어 대타 이율예에게 끝내기 역전 2점 홈런을 허용하며 5대 6으로 무너졌다. 인천의 승전보가 잠실로 전해지는 순간, LG의 정규시즌 우승이 확정됐다.
만약 1위 결정전 단판승부가 성사됐다면 LG의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결정전마저 패배하면 2위로 밀려 플레이오프부터 강행군을 소화해야 했다. 하지만 SSG의 역사에 남을 승리 덕분에 LG는 1위가 됐고, 그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1위가 됐다는 건 단순히 정규시즌 우승 타이틀만 얻은 게 아니다. 최종전 다음날인 2일부터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리는 24일까지 무려 22일이라는 시간을 벌었다는 의미다. 이 시간이 모든 것을 바꾼다.
5위부터 2위까지는 와일드카드 결정전,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치며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이미 144경기를 전력투구하며 소모된 몸으로 연일 계속되는 포스트시즌 강행군을 치르면 주축 투수들의 어깨는 한계에 다다르고, 타자들의 체력은 바닥나며, 크고 작은 부상자가 속출한다.
반면 1위 팀 LG는 이천과 잠실에서 여유롭게 한국시리즈 대비 훈련을 소화한다. 주축 투수들은 에너지를 회복하고, 부상에 시달렸던 선수들은 컨디션을 되찾는다. 때로는 부상으로 이탈했던 선수가 시리즈에 맞춰 극적으로 합류하는 일까지 생긴다. 정규시즌 때는 선보이지 않았던 깜짝 카드를 준비할 기회도 생긴다.
역대 한국시리즈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단일리그 체제 한국시리즈에서 정규리그 1위팀이 우승한 경우는 34번 중 29번으로 85.3%에 달한다. 2015년 삼성처럼 주축 선수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대거 이탈하는 식의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1위팀의 우승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다. 시리즈 초반 1위팀이 경기 감각을 찾기 전에 승리를 따내고 유리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면, 2·3차전 이후는 1위 팀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기 일쑤였다.

박해민이 통합 우승 주장이 될 수 있을까. (사진=LG 트윈스)
사실 LG는 시즌 막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3연패로 시즌을 마감하며 자력 우승을 놓칠 정도로 경기력이 추락했다. 선발진이 흔들렸고 불펜진은 붕괴 직전이었다. 시즌 내내 막강했던 타선도 삐걱거렸다. 만약 오늘부터 바로 포스트시즌이 시작된다면 우승을 장담하기 힘들 만큼 팀 전체가 망가진 상황이었다.
시즌 전체 선발진 평균자책은 3.52로 1위 한화(3.51)와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민거리 투성이다. 1선발 요니 치리노스는 벤치에 확실한 믿음을 주는 에이스라고 하기 어렵다. 상대 타순이 세 바퀴를 돌면 얻어맞기 시작해 긴 이닝을 믿고 맡길 투수가 못 된다. 한화의 코디 폰세와 맞대결한다면 크게 모자란 1선발이다.
새 외국인 투수 앤더스 톨허스트도 최근 기복을 보였다. 9월 이후 4경기에서 2승 2패 평균자책 6.16을 기록했다. 국내 에이스 임찬규도 막판 부진했다. 9월 이후 3경기에서 3패 평균자책 5.79였다. 좌완 4·5선발 손주영과 송승기가 9월에도 꾸준했지만, 큰 경기에 선발로 믿고 내보내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
불펜은 더욱 심각하다. 시즌 전체로는 평균자책 4.25로 전체 3위였지만, 후반기만 놓고 보면 4.83으로 전체 8위였다. 9월 이후로 한정하면 7.02로 LG 불펜이 리그 꼴찌였다. 염경엽 감독이 다양한 불펜투수를 골고루 활용하고 3연투 없이 철저하게 관리하며 애지중지했는데도 시즌 후반이 되자 무너졌다.
9월 이후 LG 불펜의 기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마무리 유영찬 5.14, 신인 김영우 4.35, 좌완 함덕주 5.79로 하나같이 부진하다. 베테랑 김진성이 2.57로 분전했지만 그 외엔 믿고 낼 만한 투수가 없었다. 경기 후반 이기는 상황에서 믿고 쓸 만한 투수가 없다보니 역전패가 일상이었고, 승수를 쌓는 데 애를 먹었다.
현재 LG는 도무지 정규시즌 1위를 차지한 강팀처럼 보이지 않는다. 만약 지금 당장 한화와 붙으면 선발 싸움에서 크게 밀린다. 3위 SSG와 붙으면 불펜에서 게임이 되지 않는다. 4위 삼성과 붙어도 크게 우세한 영역이 없어 보일 정도다.
그러나 1위로 정규시즌을 마감하면서, 이 모든 약점은 더는 약점이 아니게 됐다. 3주간 푹 쉬면서 재충전한 LG 선발진의 공은 체력이 떨어진 상대 타자들에겐 마치 폰세가 최고 컨디션으로 던지는 공처럼 위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치리노스와 톨허스트가 던지는 공에 상대 타자들의 배트가 밀리고, 임찬규의 공도 타자 배트를 뚫고 지나갈 거다.
밑에서 올라오는 팀들은 3차전, 5차전 혈투를 벌이고 올라온다. 매 경기가 혈투다. 불펜투수 연투와 멀티이닝은 당연하고 선발투수 불펜 투입도 당연하다. 플레이오프에서 SSG가 앤더슨과 화이트를, 한화가 폰세와 라이언 와이스를 소진하고 올라올 동안 LG 선발진은 단 한 번도 던지지 않고 기다릴 수 있다.
불펜투수들도 마찬가지다. 3주 동안 푹 쉬면서 체력을 풀로 채운다. 유영찬의 포크볼, 김영우의 속구, 김진성의 포심이 꿈들대며 타자들의 배트를 부술 것이다. 3주 휴식기 동안 불펜투수진의 역할을 재조정하고, 피치 디자인을 새로 하고, 새로운 카드를 불펜진에 충원해서 시즌 때와 완전히 다른 불펜으로 한국시리즈에 임할 수 있다.
불펜진이 정 못 미더우면 선발투수 중 한둘을 시리즈 중간 불펜에 끼워넣는 전략을 써도 된다. 1위 팀은 그게 가능하다. 한국시리즈에서 만날 LG 불펜은 시즌 후반 지치고 흔들리고 무너져서 만만했던 불펜과는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타선도 마찬가지다. 1위팀 야수진은 체력을 회복하고 컨디션을 조절해서 최상의 상태로 시리즈를 준비한다. 시즌 후반 잔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고생한 타자들은 준비기간 동안 문제를 해결한다. 망가졌던 메커니즘도 재조정할 시간이 있다. 만신창이로 올라온 상대와는 비교되지 않을 컨디션이다. 발이 무거워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와 달리 LG 야수들은 수비에서도 주루에서도 날아다닐 것이다.

염경엽 감독(사진=스포츠춘추 황혜정 기자)
LG는 이미 2023년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며 이 과정을 경험했다. 이천과 잠실에서 어떻게 훈련하고, 어떻게 몸을 만들고, 어떻게 마음을 준비해야 하는지 안다. 염경엽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안다. 선수들도 안다. 이 경험은 2위 팀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1위는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 1위가 모든 것을 갖는다. 2위부터는 결코 가질 수 없는 특권이다. 한 끗 차이로 1위를 했건, 다른 팀 덕분에 우승을 '당했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LG에게 시간이 주어졌고, 시간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선발진이 강하지 않다고? 불펜이 망가졌다고? 1위 팀에게는 문제가 아니다. 22일이라는 시간이 모든 것을 바꿔놓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1차전 마운드에 오를 LG 선발투수의 공은 9월의 그 공이 아니다. 9회를 지킬 LG 마무리의 공도 9월의 그 공이 아니다. 타석에 들어설 LG 타자들의 몸 상태도 9월의 그때가 아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간다. LG 트윈스는 간발의 차이로, 우승을 당하면서 모든 것을 가져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