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예절은 선택 아닌 책임

박현경이 경기도 양주 레이크우드골프클럽에서 지난 10월 열린 2025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상상인 한경 와우넷 오픈에서 디봇을 정리하고 있다. KLPGA 제공
클럽하우스 화장실 세면대 위에 사용하고 버려진 휴지가 널브러져 있다. 페어웨이 벙커와 그린 벙커를 가릴 것 없이 정리되지 않은 발자국이 엠보싱처럼 찍혀 있다. 코스 곳곳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고, 심지어 그린에서 발견되는 일도 있다.
골퍼라면 한 번쯤 봤을 광경이다. 누구나 얼굴을 찌푸리는 장면이지만, 부끄럽게도 이 모든 행위의 당사자는 다름 아닌 골퍼들 자신이다.
골프 에티켓과 매너가 실종된 이른바 ‘골프 빌런’, ‘진상 골퍼’로 인해 골프장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 건전해야 할 골프 문화가 무방비로 훼손되고 있다.
반드시 퇴출해야 할 골프 빌런 유형은 다음과 같다. 먼저 결과가 좋으면 자기 실력, 나쁠 때는 남 탓을 하는 골퍼다. 샷의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애꿎은 코스 상태나 캐디, 동반자에게 괜스레 불만을 토한다. 자신의 미스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다음 홀에서는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어떨까.
두 번째는 갑질형 골퍼다. 캐디에게 반말을 서슴지 않고 동반자에게 막말을 쏟아내는 경우다. “내 돈 내고 치는 골프인데 서비스가 엉망이다”, 자신이 만든 디벗조차 메우지 않으면서 “코스 컨디션이 최악이다”라고 시종일관 투덜대는 유형이다. 캐디와 동반자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만 있어도 이런 그릇된 습성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골프 규칙을 무시한 채 뻔뻔하게 플레이를 이어가는 ‘얌체형’ 골퍼다. OB구역에 떨어진 볼을 알까기로 살린다거나 슬쩍 터치해 볼이 놓인 위치를 개선하는 게 대표적이다. 골프는 플레이어 스스로가 심판이 되는 유일한 스포츠다. 습관이 되기 전에 반드시 고치는 게 좋다.
네 번째는 경기 진행 속도는 안중에도 없는 느림보 골퍼다. 이는 동반자뿐 아니라 전체 진행에도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 스윙 전 루틴을 간소화하고 불필요한 행동을 줄여 정상적인 플레이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미리 거리를 측정해 클럽 선택을 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근 급증한 음주 골퍼도 퇴출 대상이다. 라운드 전 이미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티오프하는 경우도 있다. 안전사고 위험을 높이고 동반자에게도 불쾌감을 준다. 골퍼 자신의 자제가 필요하지만, 골프장 주류 판매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코스 관리에 무책임한 유형이다. 휴지와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고, 벙커 정리는 하지 않으면서 남 탓만 하고, 디벗 메우는 기본 중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다. 골프장을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하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행동들이다.
왜 이런 골프 빌런이 양산될까. 원인을 학습 부재에서 찾는 골프 전문가들이 많다. 신규 골퍼 주요 유입원인 스크린 골프에서 먼저 그 해결책을 찾아보길 제안한다. 기본 에티켓이나 매너를 화면에 띄워 반드시 정독한 뒤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의 캠페인 활동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진상 골퍼를 가늠하는 자가진단 테스트가 있다고 한다. ‘나는 코스 관리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샷이 안 좋을 때 장비나 날씨, 또는 캐디 탓을 한다. 캐디에게 반말하거나 함부로 대한다. 규칙을 알면서도 어기는 경우가 있다. 플레이 속도가 느리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라운드 중 술을 많이 마신다’ 등의 문항이다.
이 중 4개 이상 해당하면 골프 빌런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2~3개는 가끔 진상 골퍼가 되는 유형, 0~1개이면 훌륭한 골퍼라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골프는 어느덧 비수기인 혹한기로 접어들었다. 이 시기 많은 골퍼는 연습장에서 스윙을 다듬거나 해외 투어를 떠난다. 샷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골프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과 매너를 숙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다가오는 2026년에는 골프 빌런들이 사라져 모든 골퍼가 ‘굿샷’을 넘어 ‘해피샷’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