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아마추어 최강자 '낭만 러너' 심진석 인터뷰
건설 현장 기술자 출신 이력
올해 20개 대회 이상 싹쓸이
기록보다 더 중요한 건 완주
"내 인생에 중도 포기란 없어
100세까지 행복하게 달릴 것"

마스터스(일반인) 마라톤 대회에서 올해 20회 이상 우승을 신고한 아마추어 마라톤 최강자 심진석 씨가 대회 도중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다. 전국마라톤협회
'낭만 러너' 심진석 씨는 1000만명으로 추산되는 한국 러닝계에서 올해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선수 출신이 아닌 그가 올해 마스터스(일반인) 마라톤 대회에서 20회 이상 우승하고 풀코스 2시간31분15초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여기에 마라톤에서 금기로 통하는 전력 질주를 경기 내내 하고 건설 현장 비계공으로 일할 때 안전화를 신고 매일 20㎞ 가까이 뛰며 훈련하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아마추어 마라토너가 됐다.
심씨는 최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취미를 갖고 싶어 시작했던 달리기가 이제는 내 인생의 전부가 됐다. 노력한 만큼 실력이 좋아지는 정직한 스포츠가 달리기다. 100세까지 즐겁게 뛰어보려고 한다"고 웃으며 말했다. 고교 재학 시절 체력장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심씨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권유로 2015년 본격적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처음부터 풀코스에 도전한 건 아니다. 심씨는 5㎞를 시작으로 10㎞, 하프, 풀코스로 점차 거리를 늘려갔다.
그는 "다른 마라토너들과 비슷하게 뛸 수 있는 거리를 조금씩 늘려나갔다. 처음에는 5㎞를 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면서 "이때 가진 생각이 한 단계씩 올라가자는 것이었다. 한계를 극복하며 재미를 더욱 느꼈고 꾸준한 노력으로 그토록 바라던 풀코스 완주에 성공했다"고 설명했다.
심씨의 최근 성과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는 전문적인 지도를 단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어서다. 몸이 편치 않은 부모님과 뇌전증을 앓고 있는 형을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는 건설 현장에서 비계공(작업자들이 높은 곳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임시 구조물을 만드는 기술자)으로 일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얼마 전 계약이 만료돼 현재 전국마라톤협회에서 일하고 있는 심씨가 비계공 시절 소화한 하루 일정표를 보면 입이 쩍 벌어진다.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해야 해 따로 훈련 시간을 마련하기가 어려웠던 그는 무겁고 딱딱한 안전화를 신고 출퇴근길인 16㎞를 매일 뛰어다녔다.
심씨는 "안전모 등 건설 현장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챙겨야 해 운동화를 들고 다닐 수 없어 안전화 러닝이 시작됐다. 양발이 완벽하게 적응해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뛸 수만 있다면 어떤 신발도 상관없다"고 강조했다. 올해 좋은 경기력을 보여준 비결로는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을 꼽았다. 심씨는 "주변에서 오버 페이스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 내게는 전력 질주가 가장 잘 맞는다"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레이스, 호흡, 루틴 등이 완성됐다. 앞으로도 경기 시작과 동시에 치고 나가는 레이스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42.195㎞가 아닌 50㎞까지 뛸 수 있는 몸 상태를 만드는 것도 심씨만의 독특한 준비법이다. 1년 365일 중 300일 넘게 뛴다고 밝힌 그는 풀코스 경기를 3~5일 정도 앞두고 하루를 꼭 45~50㎞ 소화한다.
심씨는 "120%에 맞춰 준비하면 경기에서 큰 어려움 없이 100%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올해 이 방법 덕분에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면서 "완주한 다음날에는 반드시 휴식을 취하고 경기 전날에는 짧은 거리를 뛴다. 어떻게 준비를 해야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지금의 준비 과정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심씨의 우승 기록만큼이나 눈에 띄는 건 기권 횟수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중도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을 갖고 있는 그는 경기 중 구급차에 실려갈 정도로 크게 아팠던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완주했다.
심씨는 "기록보다 중요한 건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으로 힘들지만 '할 수 있다. 포기란 없다'를 외치며 마음을 다잡는다. 달릴 때 가장 행복한 내게 기권이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핑계를 먼저 찾는 수많은 이들을 반성하게 만든 심씨의 유튜브 채널은 개설된 지 한 달 만에 20만명을 돌파했다. '유 퀴즈 온 더 블럭' 등 여러 방송에 출연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그는 앞으로 해외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심씨는 "아직까지 해외 대회에 나가본 적이 없다. 최근 몇몇 대회 일정을 검토하며 내년 계획을 세웠는데 벌써 기대된다"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