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해 ④] 운초 계연수가 가공인물이라고?

    고객센터이미지
    토토힌트 이벤트

[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해 ④] 운초 계연수가 가공인물이라고?

하이커뮤니티매니져 0 9 21:49















사료 선후 뒤집은 억지 주장과 인신공격성 '억까' 주장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하나로 합본해 환단고기로 엮은 인물이라는 운초 계연수의 초상화.(출처=월간개벽)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태백일사를 하나로 합본해 환단고기로 엮은 인물이라는 운초 계연수의 초상화.(출처=월간개벽)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이재명 대통령의 『환단고기』 관련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과 개혁신당 등 보수 야당과 일부에서 이 대통령이 '위서'인 『환단고기』를 '신봉'한다는 식으로 비난을 하고 있다. 과연 정말 『환단고기』는 강단사학계 측의 주장대로 위서가 맞는지 검증을 위해 이번 기사를 기획했다.<편집자 주>




지난 기사들을 통해 그간 주류 강단사학계 측에서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해 왔던 근거들을 하나씩 분석해본 결과 대부분 근거가 부실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주장의 공통점은 미리 "『환단고기』는 위서다"는 대전제 하에서 하위 논리를 구사하는 이른바 순환논증식 논법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환단고기』 자체의 내용에 대한 충분한 검토 끝에 나온 '본질적인 부분'이라기보다는 ‘자구(字句)의 사용례’ 같은 지엽적인 부분에 얽매이고 있다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거기에 더해 사료의 선후를 뒤집거나 인신공격성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는데 이번엔 그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운초 계연수가 가공인물?



위서론자 중 한 명이자 인터넷에서 '초록불'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학과 출신 소설가 이문영 씨는 『환단고기』의 저자 운초 계연수(桂延壽)가 실존하지 않는 가공인물이란 주장을 했다. 그 근거는 우리나라에 계 씨는 수안 계 씨 단본인데 수안 계 씨 족보에 계연수란 이름이 없다는 것이었다.











1999년 10월 2일 KBS 역사스페셜 방송에 출연했던 당시 수안 계 씨 종친회장 계상겨 씨.(출처 : KBS 영상 갈무리)


1999년 10월 2일 KBS 역사스페셜 방송에 출연했던 당시 수안 계 씨 종친회장 계상겨 씨.(출처 : KBS 영상 갈무리)


얼핏 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꼭 족보에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실존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다. 과거 KBS 역사스페셜에서 『환단고기』에 대해 방송했을 당시 수안 계 씨 종친회장을 맡고 있었던 계상겨 씨는 “이 분은 먼 선대가 해외에 일찍 갔거나 또 계연수 씨가 족보 할 때에 소장한 사람과 연락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못 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한 바 있다.



또 수안 계 씨 종친회의 말에 의하면 북한 출신 종친 중에 족보에 누락된 사람은 부지기수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을 하느라 후손이 끊긴데다가 증언자도 없어 족보에 오르지 못한 사람도 한 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연수를 유령 인물로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 사실 하나를 내세워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으며 이는 저열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만일 계연수가 본인의 직계 조상이라면 족보에 없다고 없는 사람 취급했을지 의문이다.





해동인물지(海東人物志)에 적힌 계연수에 대한 기록.(출처=안경전 역주본 환단고기)


해동인물지(海東人物志)에 적힌 계연수에 대한 기록.(출처=안경전 역주본 환단고기)


계연수가 실존 인물이었음은 그 제자인 이유립의 증언과 여러 문헌에서 입증되고 있다. 증거 기록을 보여주자면 1969년에 성창호에 의해 저술된 『해동인물지(海東人物志)』란 책에 이런 기록이 있다.






“계연수(桂延壽)는 자(字)가 인경(仁卿)이요, 호(號)는 운초(雲樵)다. 선천(宣川)에서 대대로 살았으며 이기(李沂)의 문인(門人)이다. 백가(百家)의 서적을 섭렵했으며 무술(戊戌)년에 단군세기(檀君世紀), 태백유사(太白遺史) 등의 책을 간행했다. 기미(己未)년에 이상룡(李相龍)의 휘하로 들어가 군정(軍政) 계획에 참여한 공이 있다. 경신(庚申)년에 만주에서 죽었다.(桂延壽字仁卿號雲樵世居宣川李沂門人涉獵百家書戊戌刊行檀君世紀太白遺史等書己未赴李相龍幕下叅畫軍政有功庚申卒于滿洲)”





만일 계연수란 인물이 누군가가 꾸며낸 가공인물이라면 성창호가 저런 기록을 어떻게 남길 수 있었을까? 아무리 그래도 인명사전인데 가공인물을 기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계연수가 대대로 살아왔던 곳이란 선천은 평안북도 선천군을 말하는데 압록강 근처에 있는 북한 땅이다.



계연수에게 자손들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자손들이 월남하지 않았다면 남한의 수안 계 씨 종친회에서 만든 족보에 계연수와 그 자손들이 등재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스승인 이기는 바로 『환단고기』를 감수했다고 발문에 적힌 해학 선생을 말한다. 위 기록의 무술년은 1898년에 해당하는데 계연수가 필사를 시작한 때가 바로 이 무렵이었을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책을 감수했다는 해학 이기는 1909년에 단식으로 죽게 되는데, 결국 계연수는 1898년부터 5권의 사서를 필사하기 시작하여 1909년 이전에 이기로부터 감수를 받고 국권 피탈 이후 만주로 넘어가 1911년에 그곳에서 초간본을 간행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외에도 계연수가 『천부경』을 입수하여 세상에 널리 알린 경위가 서술되어 있는 『정신철학통편(情神哲學通編)』도 그가 실존 인물임을 증빙하는 문헌이다. 이 책은 1920년에 전병훈(全秉薰)이 저술한 책이다. 그로 볼 때 계연수란 이름이 수안 계 씨 족보에 없으므로 실존 인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저열한 인신공격이라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삼성기》저자 인명의 문제



『환단고기』의 첫 번째 권을 구성하고 있는 《삼성기》의 경우 상권은 신라시대 승려인 안함로(安含老)에 의해 저술됐고 하권은 고려시대 인물로 추정되나 행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원동중(元董仲)에 의해 저술됐다고 적혀 있다. 『조선왕조실록』《세조실록》편 세조 3년(서기 1458년) 5월 26일 사서 수거령을 내린 기록에 안함로와 원동중이 지은 《삼성기》가 수거 대상에 올라 있는 것이 확인된다.



그런데 이에 대해 앞서 언급한 소설가 이문영 씨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安含老元董仲三聖記'가 '안함·노원·동중 삼성기(三聖記)'를 잘못 끊어 읽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환단고기』는 저자 이름부터 조작된 위서라고 강변했다. 그럼 이에 대한 근거는 무엇인가?





신증동국여지승람(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신증동국여지승람(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그는 『신증동국여지승람』황해도 해주목 수양산성 조에 나온


"세상에 전하기를 옛날에 안함(安含), 원로(元老), 동중(董仲) 3명이 땅을 택해 그것을 쌓았다고 한다(世傳昔有安含元老董仲三人卜地以築之)"


고 기록돼 있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安含老元董仲三聖記'

를 '안함, 노원, 동중 세 성인의 기록'이라 주장했다.



얼핏 봐서는 그럴 듯하지만 이런 이 씨의 주장은 중대한 결함이 있다. 일반적으로 책을 쓰는 사람이 참고문헌을 인용한다면 지금 쓰고 있는 책보다 먼저 저술된 책을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세조실록》은 조선 성종 때인 1471년에 저술됐고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중종 때인 1530년에 저술된 것이다.






만약 이문영의 주장대로라면 《세조실록》의 저자가 60년 뒤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인용했다는 해괴한 사실이 만들어진다.



그 이유는 안함, 원로, 동중이란 사람이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처음으로 기록된 사실일 뿐 다른 문헌에는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편찬할 때 수양산성의 연혁을 조사하던 중에야 알게 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보다 60여 년 전에 편찬된 《세조실록》의 저자들이 안함, 원로, 동중이란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문영 씨는 수양산성 축조자의 이름도 틀렸는데 수양산성을 쌓은 안함이라는 사람은 安含이 아니라 安咸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함’자를 바꿔버린 것은 자신의 주장을 억지로라도 끼워 맞추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 ‘安含’과 ‘安咸’은 독음만 같을 뿐이지 뜻도 다르고 모양도 완전히 다른 글자다.



또 이 씨는 ‘원로(元老)’는 ‘노원(老元)’을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우겼지만 『조선왕조실록』은 명실상부한 관찬사서이고 조선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므로 가장 높은 정확성을 요구하는 사서다. 그런 책에서 사람 이름을 앞뒤를 바꿔 기록했다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나는 주장일 뿐이고 그걸 입증할 합리적인 근거조차 없다.



또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안함, 원로, 동중 세 사람(三人)이 수양산성을 쌓았다고 했지 세 성인(三聖)이 쌓았다고 하지 않았다. 세 사람과 세 성인을 같은 뜻으로 보는 것은 심한 억측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그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안함, 원로, 동중이란 사람을 성인으로 볼 만한 증거도 없다.



아울러 한자는 한글과 달리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어디서 어떻게 끊고 해석을 해야 하는지 도통 구분하기가 어렵고 특히 인명이나 지명 같은 경우에는 사전 지식이 없다면 어디서 끊어야 할지 헛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종종 표점이나 구두점 등을 찍어서 어디서 끊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 표점이나 구두점이란 것도 현대에서야 쓰인 것이지 조선시대 때에는 그런 게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록 속에서 아예 구분해주는 경우가 많다. 위에서 든 사서 수거령 당시 기록을 보면 수거 대상 목록 중에

'文泰山王居仁薛業等三人記錄修撰企所'

이 있는데 해석하면 '문태산·왕거인·설업 등 3인이 쓴 《수찬기소》'다.



이렇게 3인 이상의 인명이 나열될 경우엔 뒤에 인원 수를 표기해 알아보기 쉽게 한 것이다. 앞에서 이문영 씨가 든 예문에도 수양산성을 축조한 사람이 3인이라고 표기해 혼동의 여지를 없애 놓았다. 그런데 《삼성기》저자의 경우는 인원 수가 표기돼 있지 않으니 안함로, 원동중 2명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따라서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인물과 《삼성기》저자들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이문영 씨의 주장은 일반적으로 문헌 고증을 할 때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저술 연대와 기록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저 "『환단고기』는 위서다"는 대전제를 미리 세워놓고 견강부회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서 곡해와 인신공격성 주장들



그 밖의 사항들을 살펴보면 박광용 교수의 경우 《단군세기》서문에 나온 '잠청배(潛淸輩)'를 두고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조선에서 청나라를 몰아낸 일본이 ‘청나라와 몰래 내통한 무리’를 가리켜 한 말인데 고려시대에 저술된 《단군세기》에 이런 말이 나오고 있으니 『환단고기』가 위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박 교수의 자의적인 해석에 불과하며 실제 潛淸輩의 뜻은 입성책동을 주도했던 ‘오잠(吳潛)과 유청신(柳淸臣)의 무리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잠의 ‘잠’과 유청신의 ‘청’을 따서 그 두 사람과 그 둘을 따르는 역적 무리들을 싸잡아 일컫는 말로 潛淸輩라 쓴 것이다.



또 박 교수는 『환단고기』 범례에

"세계 인류가 대등하게 모여서 함께 존재함을 축하하기 위해서이다"

라고 적힌 것을 두고


"강도 일본에 적극 투쟁해야 할 시기에 일본 민족까지 포함한 세계 인류의 대등한 공존을 내세운 의도가 석연찮다"


며 친일적 민족주의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위서라는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이는 매우 저열한 인신공격에 불과하며 박광용 교수의 그같은 논조로 따지자면 『백범일지』에서


"세계 인류가 너나없이 한 집이 되어 사는 것은 좋은 일이요, 인류의 최고요, 최후인 희망이요, 이상이다"


며 사해동포주의를 궁극적 이상향으로 말한 백범 김구 선생 역시도 친일파라고 해야할 것이다. 『환단고기』 범례에 나온 말이나 『백범일지』에 나온 말이나 무엇이 다른가?



오죽하면 같은 위서론자인 이도학 교수조차도 박 교수의 저런 주장에 “『환단고기』의 내용을 이른바 ‘대동아공영론’과도 결부지어 ‘친일적 민족주의’라는 관점에서 인식하는 것은 지나친 추론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결론



지금까지 총 4편의 기사에 걸쳐 이른바 『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해 검증해 봤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충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주장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처음부터 대전제를 세운 뒤 그에 맞춰 하위논리를 구사하고 있고 그로 인해 위에서 든 예시와 같이 '반대를 위한 반대', '억까' 주장들만 난무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언론들은 마치 주류 역사학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이 성서라도 된 양 그들의 말을 받아쓰기만 하며 검증을 하지 않고 있다. 언론의 기본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망각한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왜 국내 수만 명의 기자들 중에서 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검증을 해본 사람이 본 기자 하나 뿐인 것인지조차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른바 『환단고기』 위서론자들이 의도적으로 무시, 회피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 , , , , , , , , , , , , , , , , , , ,

Comments

포디움
종목별 팀순위
포디움

순위 경기 승점
1 리버풀 19 12 6 1 42
2 아스널 18 12 4 2 40
3 애스턴 빌라 19 12 3 4 39
4 토트넘 18 11 3 4 36
5 맨시티 17 10 4 3 34
6 맨유 19 10 1 8 31
7 웨스트햄 18 9 3 6 30
8 뉴캐슬 19 9 2 8 29
9 브라이튼 18 7 6 5 27
10 본머스 18 7 4 7 25
11 첼시 18 6 4 8 22
12 울버햄튼 18 6 4 8 22
13 풀럼 19 6 3 10 21
14 브렌트포드 17 5 4 8 19
15 크리스탈 팰리스 18 4 6 8 18
16 노팅엄 포레스트 19 4 5 10 17
17 에버턴 18 8 2 8 16
18 루턴 18 4 3 11 15
19 번리 19 3 2 14 11
20 셰필드 19 2 3 1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