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선 노화 속도 10배 빨라…"다크 게놈" 깨우기 때문

하이커뮤니티매니져 0 5 09.23

우주 비행이 혈액 건강과 면역 체계에 필수적인 인간 혈액 줄기세포의 노화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지난 3월 우주선 결함으로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발이 묶여 있다 9개월만에 돌아온 미국항공우주국(나사) 우주비행사

수니 윌리엄스

(59)가 불과 몇개월 사이에 주름이 깊게 파이는 등 확 늙어버린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에선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이에 따르면 시속 2만7000㎞의 속도로 지구 상공을 도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머무는 동안, 아주 미세한 정도이긴 하지만 오히려 노화가 더디게 진행돼야 마땅한데 이와는 다른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시간 지연 현상을 상쇄하고도 남는 노화 촉진 기제가 우주에서 작용한다는 걸 시사한다.

무중력, 고농도 방사선, 장기간 고립 등이 우주비행사들의 인체에 스트레스를 가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예컨대 무중력은 뼈와 근육을 약화시킨다. 무중력 상태에선 힘을 쓸 필요가 없으니 근육이 손실되고, 중력을 거슬러 혈액을 분출할 필요가 없으니 심장과 혈관도 약해진다. 뼈도 중력과의 상호작용이 없어 점점 약해지고 부서지기 쉬워진다. 과학자들은 무중력 환경에 들어서면 중력의 압박을 받지 않아 처음에는 아주 편안한 느낌을 받지만, 이는 우리 몸이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지 않고 지내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영국 사우스웨일스대 데미안 베일리 교수(인체생리학)에 따르면 우주에서는 매달 뼈와 근육의 약 1%가 손실된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9개월간 머물다 돌아온 미국 우주비행사 수니 윌리엄스. 아주 가녀린 손목이 눈길을 끈다. 미국항공우주국 제공

우주는 궁극의 인체 스트레스 시험장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연구진이 우주에서 진행되는 세포 차원의 생물학적 노화 가속 현상을 발견해 국제학술지 ‘셀 스템 셀’(Cell Stem Cell)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우주 비행이 혈액 건강과 면역 체계에 필수적인 인간 혈액 줄기세포, 즉 조혈모세포 및 전구세포(HSPC, 이하 조혈모세포)의 노화를 가속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혈모세포는 골수에 존재하는 미성숙 세포로 조혈이라는 과정을 통해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 같은 모든 유형의 혈액 세포를 지속적으로 생성하는 역할을 한다.

연구진은 2021~2023년 4차례에 걸쳐 줄기세포 배양기를 국제우주정거장으로 보낸 뒤 줄기세포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살펴봤다.

그 결과 우주로 보내진 혈액 줄기세포는 새 세포를 생성하는 능력을 일부 상실하고, 노화시계로 불리는 염색체 말단의 텔로미어 길이가 빠른 속도로 짧아지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텔로미어는 염색체 양쪽 끝에서 DNA를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염기서열 부위로,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길이가 짧아지기 때문에 노화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 가운데 하나다.

이런 현상은 우주에서 노화 속도가 빨라졌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이 연구는 지구 저궤도에서 실시간으로 줄기세포가 우주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본 최초의 연구”라고 밝혔다.

연구를 이끈 카트리오나 제이미슨 교수(샌포드줄기세포연구소 소장)은 “우주는 인체에 대한 궁극의 스트레스 시험장”이라며 “이번 연구 결과는 미세 중력과 우주 방사선 같은 우주의 스트레스 요인들이 혈액 줄기세포의 노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엔비시뉴스 인터뷰에서 ”우주에서는 지상보다 노화 속도가 10배 더 빠르다”고 말했다.

연구진이 우주에서 줄기세포를 연구하기 위해 만드는 휴대폰 크기의 생물반응기. 샌포드줄기세포연구소 제공

평소 사용 않던 에너지까지 몽땅 소진

앞서 미국항공우주국(나사)은 2015~2016년 일란성 쌍둥이 비교 연구를 통해 우주 비행이 유전자 발현과 텔로미어 길이, 장내 미생물군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알아낸 바 있다. 이번 연구는 이를 세포 차원에서 더욱 상세하게 추적한 것이다.

이번 연구에서 32~45일간 우주 비행에 노출된 조혈모세포는 세포 노화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 변화를 보여줬다. 우주에서 세포는 비정상적으로 활발해져 평소 사용하지 않던 에너지까지 소진해버리는 바람에 줄기세포의 재생 능력의 핵심인 휴식 및 회복력을 잃어버렸다. 이에 따라 새 세포를 만드는 능력은 약해지는 반면 염색체 말단을 덮고 있는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과 같은 DNA 손상 징후는 뚜렷해졌다.

또 에너지 생산 공장인 미토콘드리아에선 염증과 스트레스 징후가 나타났으며, 평소에는 휴면 상태로 있는 유전체 영역(다크 게놈)까지 깨어나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는 면역 기능을 해치고 질병 위험을 높여 노화를 가속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다크게놈은 단백질을 암호화하지 않는 DNA, 즉 기능이 잘 밝혀지지 않은 비암호화 영역을 가리키는 말로, 전체 DNA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인류 진화 과정에서 우리 몸속에 남아 인간 유전체의 일부가 된 고대 레트로바이러스의 잔재도 다크 게놈에 속한다. 인간 DNA의 8%가 이에 해당한다. 제이미슨 교수는 “강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이 영역이 활성화해 줄기세포를 죽음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다”며 “세포가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나 빨리 늙어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주에 있던 세포들을 다시 지상 환경에 놓자, 손상된 것 중 일부는 다시 정상 상태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는 적절한 조처를 취할 경우 세포를 회춘시킬 수 있다는 걸 시사한다.

연구진은 다음엔 우주 임무 중인 실제 우주비행사에게서 동일한 분자적 변화가 발견되는지 연구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는 암 연구에도 시사점을 줄 수 있다. 암 환자의 줄기세포는 우주 줄기세포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스트레스 관련 변화를 보이기 때문이다.

*논문 정보

Nanobioreactor detection of space-associated hematopoietic stem and progenitor cell aging.

DOI: 10.1016/j.stem.2025.07.013

곽노필 선임기자

[email protected]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220164.html#ace04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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