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대전, 김태우 기자] 한화는 10월 31일 대전에서 열린 LG와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미출전 선수로 3차전 선발이었던 코디 폰세, 그리고 4차전 선발이었던 라이언 와이스를 지정했다. 2차전 선발이자, 6차전에 간다면 선발로 나갈 가능성이 컸던 류현진(38·한화)의 출전 가능성이 산술적으로 열려 있다는 의미였다.
김경문 한화 감독은 출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본인이 던지겠다고 이야기한 것 같은데, 상황을 보겠다"고 확답은 미뤘다. 어쨌든 류현진의 자청이 만든 가능성이었다.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 위기에 몰린 가운데, 류현진이라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팀에 뭐라도 도움이 되어야 했다.
류현진은 전형적인 선발 투수로 컸고, 또 선발로 활약했으며 선발로 정점을 찍은 전형적인 선발 투수다. 심지어 우리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붙박이 선발'로 활약한 선수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통산 186경기에 나갔는데 이중 1경기를 제외한 185경기가 선발 등판이었다. 포스트시즌 9경기 등판도 모두 선발이었다.
불펜 루틴에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6차전이 있다면, 선발을 앞두고 이날 불펜 피칭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불펜 피칭을 실전에서 1~2이닝 정도 던지며 대체하겠다는 것인데 이것도 해본 선수가 한다. 류현진은 이런 경험이 근래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잘못될 수 있는 각오를 해야 가능한 자청이었다. 그리고 류현진은 망설임 없이 했다.
해피엔딩은 아니었다. 불펜에서 몸을 풀던 류현진은 1-3으로 뒤진 8회 팬들의 큰 박수를 받으며 마운드에 올랐다. 다만 시작부터 연속 안타를 맞는 등 불안했다. 병살타를 유도하며 8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냈지만 9회 결국은 1점을 내줬다. 타선 지원도 없었다. 한화는 그대로 1-4로 져 시리즈 전적 1승4패를 기록, 안방에서 LG의 우승 세리머니를 지켜봐야 했다. 2위는 분명 좋은 성적이지만, 올해 팀이 정규시즌 1위까지 내달렸다는 것을 고려하면 만족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
류현진은 올해 정규시즌 2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3.23을 기록하며 복귀 첫 시즌이었던 지난해(3.87)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지난해와 다르게 캠프부터 착실하게 준비할 시간이 있었고, ABS에도 잘 적응했다. 그래서 한화 소속으로는 2006년 이후 첫 포스트시즌에 기대가 컸다. 하지만 리그를 평정했던 그때 '괴물' 류현진에 비하면, 지금의 류현진은 역시 낡아 있었다.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류현진은 삼성과 플레이오프 3차전에 등판했지만 갈수록 힘이 빠진 끝에 4이닝 동안 6피안타(2피홈런) 1볼넷 3탈삼진 4실점으로 힘을 쓰지 못했다. LG와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도 3이닝 동안 홈런 한 방을 포함해 무려 7개의 소나기 안타를 맞으면서 7실점하고 무너졌다. 류현진으로서는 굴욕적인 날이었다. 5차전 2이닝 1실점까지, 류현진은 올해 포스트시즌 9이닝 동안 무려 13점을 줬다. 즉, 올해 포스트시즌 평균자책점은 13.00이었다.
포스트시즌은 아무래도 구위파 투수가 유리하다는 게 정설이다. 타자들의 집중력이 좋아지기 때문에 제구를 위주로 하는 선수들은 고생을 한다. 헛스윙이 될 게 파울이 되고, 파울이 될 것이 인플레이가 돼 안타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도 류현진이라면 다를 것'이라던 기대는, 포스트시즌의 부진과 함께 멋쩍어졌다. 이미 많은 팬들이 받아들이고 있지만 또 막상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일이다.
조금 더 전성기 때 돌아와 한화의 포스트시즌을 이끌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메이저리그에서의 성공이 길어지면서 이는 의미가 없는 가정이 됐다. 우승 반지에 대한 목마름도 길어지고 있다. 이제 개인적으로 이룰 것은 다 이뤘는데 딱 하나, 우승 반지가 없다. '무관의 제왕'이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난다.
류현진은 한화 1기 시절 2006년 한국시리즈가 가장 높은 무대였다. 이후로는 가을 무대 한 번 밟는 게 참 힘들었다. 2013년 다저스와 계약한 뒤 2019년까지 뛰면서 지구 우승은 매년 했지만 역시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얻지는 못했다. 공교롭게도 다저스는 류현진이 이적한 직후인 2020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토론토 시절에는 월드시리즈 근처에도 못 갔고, 한화로 돌아와서도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내년에는 '무관의 제왕'이라는 찜찜한 타이틀을 뗄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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